한동안 디지털 작업만 하다가 오랜만에 스케치북을 펼쳤는데, 손이 자꾸 허공에서 되돌리기를 찾더라고요. 선이 마음에 안 들면 두 손가락으로 종이를 톡톡 치고 있는 제 모습에 웃음이 났어요.
디지털의 좋은 점은 분명해요. 레이어 나눠서 색을 이것저것 바꿔볼 수 있고, 망쳐도 부담이 없으니까 과감한 시도를 하게 되죠. 짐도 가볍고요.
그런데 종이에 그려보니 잊고 있던 게 있었어요. 지울 수 없으니까 선 하나 긋기 전에 더 오래 보게 된다는 거요. 확대도 안 되니까 작은 부분에 매달리지 않고 전체를 보게 되고요. 디지털에서는 눈썹 하나 그리느라 한참 확대해 있다가 축소하면 비율이 다 틀어져 있는 일이 많았거든요.
그리고 연필이 종이 긁는 소리, 손 옆면이 까매지는 거, 이런 게 은근히 그리웠나 봐요.
어느 쪽이 낫다는 얘기는 아니고요, 요즘은 아이디어 스케치는 종이에, 채색은 태블릿으로 하고 있어요. 저처럼 두 가지 오가면서 작업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나눠 쓰시는지 궁금합니다.